일상관리
일기를 쓰면 오히려 제가 이상한 사람같아요
먼저 두 가지를 짚고 싶어요. 하나는 적어놓은 걸 다시 보고 "내가 너무 예민하고 부정적인가" 싶어 불편해지는 그 마음이요. 사실 그건 기록이 잘못돼서가 아니라, 힘들 때 쓴 글은 원래 그 순간의 힘듦이 진하게 묻어나기 때문이에요. 누구든 화나고 지쳤을 때 쓰면 극단적으로 써…
질문
힘들 때 감정을 정리해보려고 일기를 쓰거나 메모장에 생각을 적습니다.
처음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, 쓰다 보면 제가 너무 예민하고 부정적인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.
별일 아닌 일에 화가 난 것 같고, 나중에 보면 너무 극단적으로 적어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합니다.
그래서 어떤 날은 적어놓은 걸 다시 읽고 바로 지워버립니다.
“이런 생각까지 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?” 싶고, 기록을 남겨두면 오히려 그 감정에 더 빠지는 느낌도 듭니다. 그런데 아무것도 적지 않으면 제가 왜 힘들었는지, 어떤 일이 반복되는지 금방 잊어버립니다. 상담이나 진료에 도움이 되려면 감정을 어떻게 기록하는게 좋을까요?
답변
먼저 두 가지를 짚고 싶어요. 하나는 적어놓은 걸 다시 보고 "내가 너무 예민하고 부정적인가" 싶어 불편해지는 그 마음이요. 사실 그건 기록이 잘못돼서가 아니라, 힘들 때 쓴 글은 원래 그 순간의 힘듦이 진하게 묻어나기 때문이에요. 누구든 화나고 지쳤을 때 쓰면 극단적으로 써집니다. 나중에 차분할 때 읽으면 "내가 이랬나" 싶은 게 당연해요. 그건 글이 그 순간의 감정을 정직하게 담았다는 뜻입니다.
또 하나는 "기록을 남기면 오히려 그 감정에 더 빠지는 느낌"이라고 하신 부분인데, 이건 실제로 있는 현상이에요. 예리하게 짚으셨어요. 부정적인 감정을 곱씹으며 쓰면(그때 왜 그랬을까, 걔는 왜 그랬을까를 답 없이 되풀이) 오히려 그 감정이 더 깊어질 수 있거든요. 그래서 "일기가 다 좋다"는 말은 사실 반만 맞아요.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, 덫이 되기도 합니다.
그러니 물어보신 "그대로 남길까, 정리해서 쓸까"에 대한 답은 둘 다 조금씩 아니에요. 날것으로 쏟아내기만 하면 방금 말한 곱씹기에 빠지고, 억지로 긍정적으로 다듬으면 진짜 감정이 안 담깁니다. 그 사이, 구조를 조금 준 기록을 권하고 싶어요. 감정은 솔직하게 담되, 방향을 살짝 잡아주는 거예요.
이렇게요.
- 감정만이 아니라 사실을 함께. "너무 화났다"만 쓰면 감정이 증폭되기 쉬운데, "화요일 회의에서 A가 내 의견을 자르고 넘어갔다, 그때 화가 났다"처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(사실)와 어떤 감정이었는지를 나눠 적으면, 감정에 덜 빠지면서 패턴은 남습니다.
- 한 줄 더: "그래서 나는 무엇을 원했나." 감정 뒤에 숨은 바람을 한 줄 붙여보세요. "인정받고 싶었다", "존중받고 싶었다"처럼요. 이게 곱씹기를 이해로 바꿔줍니다.
- 짧게, 그리고 덮기. 길게 쓸수록 곱씹기 쉬워요. 몇 줄로 적고 덮는 걸로 충분합니다. "다 쏟아내야 후련하다"는 느낌이 들어도, 그 순간엔 짧은 게 더 안전해요.
그리고 지우지 않으셔도 됩니다. 부정적인 말이 많아도 그대로 두세요. 부끄러워서 지우고 싶은 그 기록이, 사실 상담이나 진료에서 가장 값진 자료거든요. "나중에 보니 극단적이었다"는 그 낙차 자체가 정보예요. 그 순간엔 그만큼 힘들었다는 뜻이고, 반복되는 게 뭔지 보여주니까요. 다만 다시 읽는 게 괴로우시면, 쓴 직후엔 읽지 말고 며칠 지나 진료 전에만 훑어보셔도 됩니다.
한 가지 덧붙이면, 이렇게 써도 당장은 기분이 크게 나아지지 않을 수 있어요. 글쓰기의 효과는 즉각적이기보다 시간이 지나며 천천히 나타나는 편이거든요.
ℹ️ 이 답변은 일반적인 정보이며, 특정 개인에 대한 진단이 아닙니다.
🏥 기록을 다시 보는 게 지나치게 괴롭거나, 적을수록 감정이 더 깊어지고 오래간다면, 그 부분을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에서 함께 다뤄보시길 권합니다.
💬 룰랭에 남길 때도 마찬가지예요. "무슨 일이 있었는지, 어떤 감정이었는지, 무엇을 원했는지" 순으로 말해보면, 감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나중에 진료에서 꺼내기 좋은 기록이 됩니다.
출처
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, 「우울과 우울장애」
https://mentalhealth.go.kr/portal/disease/diseaseDetail.do?dissId=38
김소정·김지혜·윤세창, 「한국판 반추적 반응 척도(K-RRS)의 타당화 연구」
https://www.kci.go.kr/kciportal/landing/article.kci?arti_id=ART001422486
김수연·신민섭·조용래, 「반응양식과 에세이 작성처치가 우울변화에 미치는 영향」
https://www.kci.go.kr/kciportal/landing/article.kci?arti_id=ART001320494
김세웅 전문의 · 채움 정신건강의학과의원
본 답변은 참고용 일반 건강정보이며, 의학적 판단이나 진료행위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.